국제유가 10% 급등…美 대이란 봉쇄 산업재 공급망 흔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산 원유에 대한 해상 봉쇄를 전면 재개한다고 공식 선언한 13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장중 최대 10%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88달러를 돌파하며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고, 브렌트유도 91달러 선을 넘어서며 에너지 시장 전반에 충격을 줬다.
이란은 하루 약 150만~18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으며, 글로벌 원유 공급량의 약 1.5~2% 수준을 차지한다. 실질적인 물량 비중은 크지 않지만, 중동 지역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이 시장에 과도하게 반영되면서 유가를 끌어올리는 심리적 효과가 증폭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유가 급등은 산업재 공급망 전반에 연쇄적인 비용 압력을 가한다. 에틸렌,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기초 원료 가격이 즉각적으로 오르고, 이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합성고무, 접착제, 도료 등 산업용 소재 제품 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단기간에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운송비 상승도 핵심 변수다. 중동을 경유하는 해상 운송 루트에 대한 보험료(전쟁 위험 보험)가 급등하고, 일부 선사들은 특정 항로에 대한 운항 회피 또는 우회 항로 선택에 나서고 있다. 이는 해운 운임 상승으로 이어져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재·소재 기업들의 물류 비용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린다.
국내 산업계의 영향도 가시화되고 있다. 에틸렌 나프타 분해(NCC) 사업을 운영하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대형 석유화학사들은 원유 및 나프타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가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분기 영업이익이 10~15% 수준 감소할 수 있다는 내부 추정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소재 업계 역시 간접적인 영향권에 든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트, 세정제, 특수 가스 등의 원료 상당 부분이 석유화학 계열 물질에 기반하고 있어, 유가 급등이 소재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파급 경로가 존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큰 영향은 없지만 유가 고공행진이 3개월 이상 이어지면 소재 단가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로 연결되는 분위기다. 미 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후퇴하면서 달러 강세가 심화되고, 이는 원화 약세를 통해 수입 원자재 가격을 추가로 끌어올리는 이중 부담을 한국 기업들에게 안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 주요 산유국들의 대응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OPEC+는 이미 하루 생산량을 전년 대비 줄이는 감산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이란 공급 차질을 상쇄할 여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분석가들은 단기적으로 WTI가 95달러 선을 시험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에너지 대전환 관점에서 이번 유가 급등을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재생에너지 업계에서는 고유가 국면이 태양광, 풍력 등 대체 에너지에 대한 경제성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의 주가도 동반 강세를 보이며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정부는 에너지 수급 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비축유 방출 등 비상 대응 옵션을 점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요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을 대상으로 긴급 간담회를 열어 수급 현황을 파악하고 기업 애로 사항 접수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가 급등의 지속성을 가늠하는 데 향후 미·이란 협상 전개와 중동 지역 군사적 긴장의 수위가 핵심 변수라고 지적한다. 한 에너지 경제 전문가는 '봉쇄 선언이 실제 군사적 조치로 이어질 경우 유가의 추가 상승 폭은 예측 불가능한 수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재·소재 투자 측면에서 이번 사태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정유·에너지 관련 산업재 기업들은 단기 수혜가 예상되는 반면, 원자재 다소비 제조업체들은 비용 부담 확대로 수익성 악화 리스크가 높아진다.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 내 에너지 노출 비중과 원가 민감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