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반도체 핵심 희귀 동위원소 생산 나선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이 요르단에 수출한 연구용 원자로 'JRTR(Jordan Research and Training Reactor)'가 반도체 및 첨단 소재 산업에 활용 가능한 희귀 동위원소(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기능을 본격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원자로는 한국이 독자 기술로 설계·건설해 2016년 요르단에 이전한 5MW급 연구로로,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에 주로 활용돼 왔다.
이번에 새롭게 추진되는 기능은 반도체 공정에서 불순물 도핑(doping) 재료로 활용되는 특수 동위원소 생산이다. 동위원소 도핑 기술은 실리콘 웨이퍼의 전기적 특성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데 사용되며, 이른바 'NTD(중성자 변환 도핑, Neutron Transmutation Doping)' 공정이 핵심이다. NTD 실리콘은 전력 반도체 소자의 성능과 균일성을 대폭 향상시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NTD 실리콘은 고순도 실리콘 잉곳에 중성자를 조사(照射)해 인(Phosphorus) 원소로 균일하게 변환시키는 방식으로 생산된다. 이 공정에는 안정적인 중성자 플럭스(flux)를 제공할 수 있는 연구용 원자로가 필수적이며, 전 세계적으로 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이 매우 제한적이다. 현재 주요 공급국은 독일, 체코,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와 한국(HANARO)에 불과하다.
요르단의 JRTR이 NTD 서비스를 시작할 경우,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최초의 반도체 소재용 동위원소 생산 기지가 탄생하게 된다. 특히 글로벌 NTD 실리콘 수요가 전기차, 태양광 인버터, AI 서버용 전력 소자 확산으로 급증하는 상황에서 공급 다변화의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NTD 실리콘 시장은 2025년 기준 약 6억 달러(약 8,7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며, 2030년까지 연평균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 반도체 수요 확대와 함께 고품질 NTD 실리콘에 대한 프리미엄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어, 시장 진입에 성공하는 신규 공급자들은 상당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요르단 원자로에서 NTD 서비스가 가능해지면 중동 지역 반도체 소재 수요를 현지에서 일부 충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 참여 폭도 넓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원자력 수출을 넘어 소재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교두보 확보라는 의미도 갖는다.
국내 반도체 소재 업계는 이번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력 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면서 NTD 실리콘의 국내 수요도 증가하고 있으나, 국내에서 운용 중인 HANARO 원자로의 처리 용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요르단 원자로를 활용한 추가 공급 루트 확보는 이 공급 병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요르단 정부 역시 이번 기능 확장을 국가 산업 고도화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요르단은 자국 내 반도체 관련 제조업을 육성하는 '요르단 디지털 경제 비전 2030' 계획을 추진 중이며, 연구용 원자로를 소재 생산 인프라로 활용하는 방안이 이 계획의 핵심 과제로 포함됐다.
한국과 요르단 양국은 원자력 협력 협정에 기반해 기술 교류와 인력 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향후 NTD 서비스 상업화가 실현될 경우 한국 기업들이 기술 서비스 및 장비 공급 분야에서 수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특히 중성자 조사 장비와 측정 장비 분야 국내 강소기업들의 수출 가능성이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원자력 기술과 첨단 소재 산업의 융복합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례라고 평가한다. 한 소재 전문 연구원은 '핵기술을 활용한 소재 생산은 기존 화학 공정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고균일성·고순도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시장 전망과 관련해 NTD 실리콘 외에도 게르마늄, 셀레늄 등 다양한 희귀 동위원소의 반도체 활용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어, 연구용 원자로의 소재 산업 활용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가 글로벌 과제로 부상한 시대에 원자력 기반 소재 생산 기술은 전략적 가치를 빠르게 높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