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박 강유전체 소재, 저전력 마이크로칩 개발 새 길 열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Berkeley Lab) 연구팀이 일반 소재의 극초박 박막 형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강유전성(ferroelectric) 특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재는 전압을 가하지 않아도 자발적 전기 분극 상태를 유지하며, 기존 강유전체보다 훨씬 얇은 두께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강유전체는 외부 전기장 없이도 자발 분극을 유지하는 소재로, 비휘발성 메모리(FeRAM), 센서, 액추에이터 등에 활용된다. 그러나 기존 강유전체 소재는 두께가 수 나노미터 수준으로 얇아지면 분극 특성이 급격히 사라지는 '임계 두께 문제'로 인해 소형화에 한계가 있었다.
버클리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해당 소재가 2~3나노미터 두께에서도 안정적인 강유전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전자현미경과 X선 회절 분석으로 입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게재됐으며, 소재 전문 미디어 AZoM을 통해 광범위하게 보도됐다.
이 발견이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강유전체 기반 트랜지스터(FeFET)와 커패시터(FeCAP) 소형화 가능성을 열기 때문이다. FeFET는 게이트 절연층에 강유전체를 적용해 초저전력으로 데이터를 기억하는 소자로, AI 엣지 디바이스와 뉴로모픽 컴퓨팅에 적합한 차세대 소자 구조다.
현재 인텔, TSMC,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HZO(하프늄·지르코늄 산화물) 기반 강유전체 소재를 적극 연구하고 있다. 버클리의 이번 발견은 HZO 외에 새로운 후보 소재군의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경쟁 구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국내 반도체 소재 업계도 강유전체 소재 개발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솔브레인, 덕산테코피아 등 전구체 전문 기업들이 차세대 강유전체용 전구체 소재 개발을 검토 중이며, KAIST와 POSTECH의 관련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강유전체 소재 응용에서 가장 큰 과제는 대면적 균일성과 반복 동작 신뢰성이다. 실험실 수준에서의 발견이 양산 공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통상 5~10년의 공정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업계 전문가는 '이번 발견이 2030년대 초 양산 메모리 소자에 적용될 수 있는 시드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소재가 기존 CMOS 공정과의 호환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존 팹(반도체 생산 시설) 인프라를 크게 변경하지 않고도 적용할 수 있어 상용화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소재 채택 결정에서 중요한 경제적 요인이다.
글로벌 강유전체 메모리 시장은 2025년 약 35억 달러에서 2030년 1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AI 추론 디바이스와 자율주행 차량의 엣지 컴퓨팅 수요가 핵심 성장 동인이다. 이 시장에서 소재 기술의 차별화가 시장 점유율을 좌우할 전망이다.
국내 정부는 반도체 첨단 소재 R&D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2026년 세제개편안에 포함된 국내생산세액공제 제도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면, 핵심 소재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판매하는 기업들의 투자 유인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버클리 연구팀은 향후 해당 소재의 도핑 조건과 계면 제어 기술을 고도화해 소자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산업계와의 기술 이전 협의도 이미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실용화까지의 타임라인이 예상보다 단축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근본 물리 현상의 새로운 발견이 실용화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인 HZO 강유전체의 궤적을 이번 연구가 따라갈 수 있을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기초과학 투자가 소부장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사례가 늘면서, 산학 협력 기반의 소재 연구 생태계 조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