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공급망 규제, 소재·드론으로 전선 확대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규제 전선이 반도체에서 소재·드론·방산 부품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조선비즈 등 주요 매체에 따르면 양측은 각자의 핵심 산업을 보호하고 상대방의 기술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규제 조치를 동시다발적으로 강화하는 추세다. 이 갈등의 심화는 글로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에 공급처와 판로 양쪽 모두에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 측에서는 최근 반도체 소재에 15% 추가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블랙매스(폐배터리 처리 중간 소재)와 텅스텐 스크랩의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다. 또한 북한·중국·러시아산 탄탈럼의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도 확정됐다. 중국이 수출을 통제하는 소재에 대해서는 미국 내 대체 생산을 지원하는 30억 달러 투자도 병행한다.
중국 측은 희토류 수출통제 대상을 유럽 기업으로 확대했고, 헬륨과 마그네슘에 이어 갈륨·게르마늄 등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포토레지스트 수출 통제라는 맞불 형태의 규제도 새롭게 도입됐다. 이는 반도체 공정 소재 분야에서 공급망 무기화가 본격화됐음을 의미한다.
드론 분야도 새로운 전선이 됐다. 미국은 중국산 드론 부품의 안보 위협을 이유로 DJI 등 주요 중국 드론 기업을 제재 목록에 올렸고, 방위산업용 드론 소재와 부품의 국내 조달을 의무화하는 방향을 추진 중이다. 드론에 쓰이는 탄소섬유 복합재, 배터리 셀, 제어 IC 등이 수급 불안 소재로 부상하고 있다.
이 규제 갈등이 한국 소부장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높아져 원료 조달 비용이 오르고 납기 리스크가 커지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반면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유럽이 중국 이외의 신뢰할 수 있는 소재 공급처를 적극 발굴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대안 공급자로 부상할 수 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7월 한 달간 국내 반도체 소부장 관련주를 집중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들이 미·중 사이에서 중립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소재 공급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 소부장 기업들의 글로벌 협상력이 높아지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정책 면에서 한국 정부는 호남 반도체 생태계 구축과 소부장 특화단지 공모를 통해 국내 소재·부품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소부장 기업들은 대기업 투자 로드맵이 명확히 공유돼야 실질적인 생태계 구축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규제 환경 변화에 맞춰 정부의 지원 방향도 더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소재 기업들의 전략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머크(Merck), 다우(Dow) 등 서방 소재 대기업들은 공급망을 아시아 내 중국 이외 지역(한국·일본·대만·인도)으로 다변화하거나, 현지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이 흐름은 한국 소재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될 기회를 제공한다.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이미 일부 공정 소재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독자적인 소재 기술과 특허 포트폴리오가 필수 조건이 된다. 외산 의존도가 높은 소재에 대한 국산화 투자가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급망 규제 확산이 일시적 갈등이 아닌 구조적 분리(디커플링)의 본격화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재·소부장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중 모두와 거래하는 한국 기업들은 규제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각 소재별로 복수의 공급선을 유지하는 이중화 전략이 필수'라고 말했다.
향후 시장 전망으로는 규제 갈등이 심화될수록 소재 분야의 지역화(regionalization)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유럽·아시아 각 블록 내에서 소재 자급률을 높이는 정책이 강화되면서, 각 지역의 소재 생산 기업들이 수혜를 입는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한국 소부장 기업의 전략적 포지셔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