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립연구소, 3D프린팅으로 원자로 핵심 부품 제조 혁신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가 민간 제조기업 A.J. 터크사(A.J. Tuck Company)와 공동으로 첨단 적층 제조(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차세대 원자로 및 에너지·방산 분야 핵심 부품의 생산 복잡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기술의 핵심은 기존에 여러 단계의 가공과 조립을 거쳐야 했던 복잡한 구조의 에너지 부품을 3D프린팅 단일 공정으로 일체형 제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품 수를 절감하고 제조 리드타임을 단축하는 동시에 용접부 결함 등 품질 리스크도 낮출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원자력 발전 부품은 고온·고압·방사선 환경을 견뎌야 하므로 소재 선정과 품질 인증 기준이 극히 엄격하다. ORNL은 이번 연구에서 니켈 합금과 스테인리스강 계열 분말 소재를 활용한 적층 제조 공정이 기존 단조·주조 공정과 동등한 수준의 기계적 특성을 구현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A.J. 터크사는 항공우주·방산 분야 정밀 부품 제조 전문기업으로, 이번 ORNL과의 협력을 통해 원자력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됐다. 양 기관은 공동 특허 출원과 함께 상용화 로드맵 수립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MR(소형모듈원자로) 시장의 급성장이 이번 기술 개발에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 SMR은 대형 원전 대비 부품 표준화와 공장 제작(팹리케이션) 비중이 높아, 3D프린팅을 통한 부품 제조 혁신이 비용 경쟁력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글로벌 SMR 시장은 뉴스케일, 테라파워, 롤스로이스 등 다수 기업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부품 공급망의 현지화와 납기 단축이 상용화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SK이노베이션이 테라파워의 나트륨 냉각 SMR 사업에 참여하는 등 국내 기업들의 SMR 공급망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에너지부 예산을 통해 적층 제조 기반 원전 부품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ORNL은 첨단 제조 분야의 핵심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성과는 DOE의 '첨단 원자력 제조 이니셔티브' 프레임워크 내에서 나온 것으로, 향후 NRC(원자력규제위원회) 인증 과정을 거쳐 실용화될 예정이다.
국내 원자력 소재·부품 업계 입장에서도 이번 기술은 주목할 만한 신호다. 국내 원전 부품 제조사들이 3D프린팅 공정을 도입할 경우 소재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커스터마이징 부품 납기를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3D프린팅 원전 부품이 상용화되면 소재 스펙 자체가 바뀌어, 분말 소재 공급망이 새로운 수혜 섹터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적층 제조용 금속 분말 시장도 이번 흐름의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등급 니켈 합금 분말, 스테인리스 316L 분말 등 고순도 소재에 대한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며, 국내 포스코, 현대 등 소재 기업들도 해당 시장 진입을 타진하고 있다.
향후 상용화 타임라인은 규제 인증 속도에 달려 있다. ORNL은 2027년까지 파일럿 규모의 부품 생산을 완료하고, 2029~2030년 첫 상업 SMR 프로젝트에 3D프린팅 부품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적층 제조 기반 원전 부품이 본격 확산될 경우 기존 단조·주조 공급망에 상당한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성과는 에너지 전환 시대에 제조 혁신이 공급망 재편과 맞물리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3D프린팅 기술이 고부가 산업재 분야에서 실질적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드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