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WTI 70달러 붕괴…공급 우려 해소 영향

국제 원유 시장에서 공급 부족 우려가 빠르게 해소되며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2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배럴당 70달러 선을 하회하며 마감, 최근 수개월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유가 급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중동 지역 긴장 완화가 꼽힌다. 한때 원유 운송의 최대 병목 지점으로 우려됐던 이란과 오만 사이의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통항량이 정상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사 아람코도 일시 중단됐던 원유 선적을 재개했다. 앞서 사우디 측의 수출 물량 조정 가능성이 제기되며 공급 부족 우려를 키웠으나, 이번 선적 재개 소식이 시장 심리를 반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생산 확대 기조도 유가 하락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OPEC+는 올해 하반기부터 단계적 감산 완화를 추진해 하루 생산량을 약 50만 배럴 이상 늘리기로 한 상황으로, 이미 시장에는 공급 증가 신호가 반영되고 있다.
국제 에너지 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5년 글로벌 원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 과잉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증가로 원유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는 반면, 미국 셰일 오일을 포함한 비(非)OPEC 생산국들의 산출량은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6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번 주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7원대로 집계됐다. 정부의 7차 석유 최고가격 인하 조치도 국내 유가 하락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유가 하락은 에너지 비용에 민감한 제조업, 항공, 해운, 화학 업종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업계는 원가 부담이 완화되는 직접적인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국내 정유사들은 유가 하락 시 재고 평가 손실(래깅 효과)이 발생하는 구조적 특성상 단기적으로 수익성 압박을 받을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대 정유사들은 유가 변동성 관리와 정제 마진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유가 하락의 여파가 감지되고 있다. 원유 관련 에너지 주식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인 반면, 항공사와 해운사 주가는 연료비 절감 기대감으로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냈다. 달러화 강세와 맞물려 원유 수요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에너지 전문 리서치기관인 우드맥킨지는 WTI 유가가 당분간 배럴당 65~72달러 범위에서 등락을 반복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결정, 중국 경기 회복 속도,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유가 방향성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국내 소비자와 기업 입장에서는 유가 하락이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되는 반면, 에너지 전환 투자 매력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양면이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유가 등락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에너지 믹스 다변화와 효율 향상에 중점을 둔 중장기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