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금 연동 의무화…기업 인력 전략 대변화 예고

한국의 고용 연장 논의가 단순한 취업 기간 연장을 넘어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과의 연동 방안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이 실질적인 노후 소득 보장으로 이어지려면 연금 제도와의 유기적 연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현행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 연령은 만 59세로 규정되어 있다. 반면 법정 정년은 만 60세이고, 정부는 이를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간극으로 인해 정년을 연장해도 연금 가입 기간이 늘어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연금 의무가입 상한을 정년과 연동해 65세까지 상향하고, 그 기간 동안 추가 납부한 보험료에 대한 소득 보정 장치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고령 근로자의 실질 노후 소득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책 변화가 기업의 인건비 구조와 인력 운용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년 연장과 연금 연동이 동시에 추진될 경우, 기업의 고령 인력 고용 유지 비용이 늘어나는 반면 숙련 인력 이탈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
특히 제조업·반도체·소재 산업에서는 숙련 기술자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정년 연장의 실질적 수요가 높다. 반도체 클린룸 운용, 정밀 소재 공정 관리 등 고도 숙련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경험 있는 고령 인력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다.
고용노동부는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 유지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과 임금 피크제 개편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다. 임금 피크제가 단순 임금 삭감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직무 재설계와 연계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노동계는 정년 연장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연금 수령 개시 연령 상향과 연동될 경우 사실상의 노후 소득 삭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제도 개편 시 취약 계층 보호 장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이미 65세 정년을 기업 의무화하고 70세까지의 취업 기회 확보를 권고하는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운용 중이다. 독일도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7세로 높이면서 고용 연장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국내 기업들은 정책 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인력 전략 점검에 나서고 있다. 삼성·SK·LG 등 대기업들은 사내 고령 인력 활용 방안을 담은 'HR 중장기 로드맵'을 올해 중 업데이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 의무가입 연동과 소득 보정 장치 도입은 국가 재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 기금 수입 증가와 지급 개시 시점 조정이 맞물리면 기금 소진 시점을 일부 늦출 수 있다는 긍정적 분석이 있는 반면, 재정 부담 전가 논란도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가 단기 입법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통한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권고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년·연금 연동은 노동시장 구조 전체를 바꾸는 복합 개혁"이라며 장기적 시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향후 정부가 관련 법률 개정안을 어떤 일정으로 국회에 제출할지, 그리고 노사정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지가 정책 실현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제조·소재 업계 인사담당자들은 국회 논의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