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전·로봇 확산에 전력 인프라 산업재 수요 급증

AI 기반 가전제품과 산업·서비스 로봇의 급속한 보급이 전력 인프라 산업재 시장의 구조적 수요 확대를 이끌고 있다. 데이터센터, 스마트팩토리, AI 가전 등 고전력 소비 기기의 증가로 전력망 용량 확충 필요성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변압기·배전반·전력 케이블 등 전통 전력 산업재 품목이 '신(新)성장 테마'로 재조명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5년 약 415TWh에서 2030년에는 1,000TWh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현재 독일 전체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 규모로, AI 연산 수요 확대가 전력 인프라 투자 사이클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국내 전력 설비 업체들의 수주 잔고는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 중이다. LS일렉트릭은 2026년 상반기 기준 수주 잔고가 약 4조 2,000억 원을 돌파해 전년 동기 대비 38% 급증했으며, 효성중공업의 변압기 부문 수주 잔고도 3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전선, 가온전선 등 전력 케이블 업체들도 사상 최대 수주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용 초고압 변압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54kV급 이상 초고압 변압기의 경우 납기가 최대 24~36개월에 달하는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가격도 2년 새 평균 30~40%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확산이 맞물리면서 전력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로 전개되고 있다'며 '변압기, 스위치기어, 배전반 등 핵심 품목의 증산 투자를 올해 안에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봇 산업의 성장도 전력 인프라 수요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다. 산업용 로봇 한 대당 소비 전력은 평균 3~15kW로, 스마트팩토리에 수백 대의 로봇이 도입될 경우 수 MW급 추가 전력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로봇 전용 공장 '메타팩토리' 프로젝트 등도 대규모 전력 설비 발주로 이어질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미국 전력망 현대화 프로그램(Grid Modernization Initiative)에 따라 향후 5년간 1,000억 달러 이상의 전력 인프라 투자가 예정돼 있다. 이 중 상당 부분이 한국산 변압기·케이블 제품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있어 국내 산업재 수출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에서도 'REPowerEU' 정책 아래 전력망 확충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국의 전력 계통 연계 강화 프로젝트가 잇달아 발주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유럽 시장 수주전 참여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공급망 측면에서는 변압기 핵심 소재인 방향성 전기강판의 수급 불균형이 생산 확대의 발목을 잡는 변수로 꼽힌다. 포스코와 일본 JFE스틸 등 주요 공급업체들이 증산에 나서고 있지만, 설비 증설에 시간이 걸려 단기적인 공급 부족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는 국내 전력 인프라 강화를 위해 2026년 한국전력 투자 예산을 15조 원 규모로 편성했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송배전망 확충과 AI 데이터센터 전용 전력망 구축 사업이 핵심 내용으로, 국내 전력 산업재 기업들의 수혜가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전력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최소 1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AI, 전기차, 재생에너지의 동시 확산이 전력망에 가하는 수요 압박은 단기에 해소될 성질이 아니다'며 '전력 인프라 산업재 기업들이 20년 만에 맞이하는 최대 호황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 시사점으로, 전력 인프라 산업재 섹터는 AI 반도체·데이터센터 테마의 간접 수혜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대한전선, HD현대일렉트릭 등을 핵심 수혜주로 꼽으며, 2026~2027년 실적 성장 가시성이 높은 업종으로 분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