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실적 양극화…AI 소재 업체만 웃었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의 2026년 상반기 실적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HBM·AI 서버 공정용 특화 소재 업체들은 큰 폭의 이익 개선을 기록했지만, 범용 부품·장비 업체들은 중국 경쟁 심화와 고객사 재고 조정의 이중고로 고전하는 '호황 속 양극화' 양상이 뚜렷하다.
증권업계 분석에 따르면 국내 주요 소부장 상장사 30여 곳 중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개선된 업체는 절반 수준인 15~16곳에 그쳤다. 나머지는 정체 또는 역성장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률도 업체별로 3~18%로 큰 편차를 보여 기술력과 포트폴리오에 따른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적 개선 업체들의 공통점은 HBM(고대역폭메모리), AI 서버용 첨단 패키징, EUV 공정 관련 소재 납품처를 확보한 곳들이다. SOC 전구체, HBM 접착 소재, EUV 포토레지스트 원료 등 고부가가치 소재 업체의 상반기 영업이익 증가율은 평균 40~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범용 D램·낸드 공정용 소재 업체들은 가격 경쟁 심화와 재고 조정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영향으로 중국이 국산화에 성공한 분야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시장을 잃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범용 소재 의존도가 높은 업체일수록 타격이 크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소재 대기업들의 한국 시장 공략도 중소 소부장 업체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머크, JSR, 신에쓰화학 등이 현지 투자를 늘리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납품처 확보에 나서고 있어, 기술 차별화가 없는 국내 업체들의 경쟁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투자 측면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이 고부가가치 소부장 업체를 선별 매수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HBM 및 온디바이스 AI 공정 관련 소부장 종목은 최근 한 달간 외국인 순매수 상위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반면 범용 소재 업체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하락세를 보이며 시장의 냉정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정부는 소부장 2.0 정책을 통해 첨단 공정용 핵심 소재 개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중소·중견 소부장 업체들의 AI 반도체 공급망 진입을 돕는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으며,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지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하반기 전망은 엇갈린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AI 반도체 수요가 연말까지 강세를 유지하겠지만 수혜는 특정 밸류체인에 집중될 것으로 본다. 한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소부장 투자 시 기업별 포트폴리오의 첨단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중 반도체 규제 강화는 양날의 검이다. 대중 수출규제가 단기적으로 한국 소부장 업체들의 반사이익을 제공하지만, 공급망 재편에 따른 불확실성도 함께 커진다. 선제적 시장 다변화 전략 없이는 반사이익이 일시적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소부장 업계가 살아남으려면 AI·차세대 반도체 공정 관련 틈새 시장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글로벌 팹리스와의 공동 개발 과제 발굴도 중요한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업계는 연말까지 실적 양극화가 더욱 선명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양극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라고 진단한다. 고부가 니치 마켓을 선점한 업체와 범용 시장에 머문 업체 간의 실적 및 기업가치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부장 업계 전반의 기술 고도화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