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반도체용 황산 증산 가속

고려아연이 반도체용 고순도 황산 증산 계획을 본격화하고 있다. 황산은 웨이퍼 세정과 식각 공정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필수 소재로, 불순물 농도가 수 ppb 수준 이하인 '초고순도 황산'은 첨단 로직과 메모리 공정에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 수요의 상당 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내재화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황산가스를 전환해 황산을 생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기존 공업용 황산 생산 인프라를 기반으로 정제 공정을 강화해 반도체 등급 황산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이다. 이는 원재료 자급이 가능한 구조여서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황산 시장은 동양화학, OCI 등 기존 화학기업들이 점유해 왔으나, 반도체 공정 고도화로 요구 순도가 높아지면서 공급 가능 기업이 제한적이다. 고려아연의 참전은 시장 경쟁 구도를 바꿀 수 있는 변수로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생산 규모와 제련 역량이 후발 주자임에도 빠른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 반도체 투자 확대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팹의 가동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고순도 화학소재 전반의 수요가 강세다. 황산의 경우 웨이퍼 한 장 세정에 수십 리터가 소요되는 만큼 팹 가동률 변화에 민감하게 수급이 연동된다. 2026년 상반기 기준 고순도 황산 국내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8%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급 측면에서는 일본 스텔라케미파, 독일 바스프 등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으나,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운임 변동성이 안정적 조달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소부장 공급망 국산화 지원 대상에 고순도 화학소재를 포함시키면서 국내 생산 확대에 우호적인 정책 환경이 형성됐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 사업은 비철금속 제련의 부산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원가 구조가 유리하고, 향후 전략 소재 다각화 측면에서도 중요한 방향'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완공 시점을 조율 중이며, 이르면 연내 주요 계획이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반도체 소재 업계에서는 황산 외에도 인산, 불산, 과산화수소 등 고순도 화학소재의 국산화율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처럼 소재 전반의 내재화 흐름이 가속화되는 배경에는 중국의 핵심 광물·소재 수출 규제 강화가 자리한다. 서방 팹들은 조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수 공급처 확보(멀티소싱)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황산은 반도체 이외에도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해액, 디스플레이 식각 공정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고려아연이 반도체 등급 황산 생산에 성공하면 이들 첨단 산업 소재 전반으로 공급 범위를 넓힐 수 있어 장기 성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고려아연의 반도체 소재 진출이 기업 밸류에이션 재평가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존 아연·금 등 금속 자원주로 분류되던 고려아연이 소재·화학 기업의 성격을 갖추게 되면, 주가 배수(멀티플)가 상향 조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반도체 등급 인증까지는 통상 1~2년의 퀄리피케이션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변수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고려아연이 주요 국내 팹과 공급 계약을 언제 체결하느냐다. 파일럿 생산과 품질 인증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27년 이후 본격적인 납품이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국내 반도체 소재 공급망 강화라는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어 정부 지원 가능성도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