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SML 장비 대거 비축…미국, 완전 수출금지 압박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서방의 수출 규제 강화에 앞서 네덜란드 ASML의 액침 심자외선(DUV) 리소그래피 장비를 대규모로 비축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전직 고위 관료들에 따르면, 중국 소유 팹이 확보한 액침 장비는 총 343대에 달하며, 금액으로는 수십억 달러 규모다.
액침 DUV 장비는 최첨단 EUV에 비해 한 단계 낮은 기술이지만, 7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양산에도 멀티 패터닝 공정을 적용하면 상당한 수준의 미세 공정이 가능하다. 화웨이와 SMIC 등 중국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자체 첨단 칩 개발을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
전직 미국 관료들은 SCMP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동맹국들과 협력해 DUV 장비 수출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SML 장비의 대중국 판매는 이미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제한됐으나, 이전에 계약된 물량과 구형 장비에 대한 예외 조항이 허점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ASML은 2025년 기준 연간 매출의 약 15~20%를 중국 시장에서 거뒀으며, 추가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단기 실적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네덜란드 정부는 미국의 압박과 자국 기업의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외교적 난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 상무부는 현재 추가적인 DUV 수출 통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존에 허용됐던 유지보수·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서비스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사태는 반도체 장비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낸다. 첨단 리소그래피 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ASML의 시장 지위 때문에, 수출 통제의 효과는 동맹국 전체의 일체화된 행동 없이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반도체 업계도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생산법인을 운영 중이며, 추가 수출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 팹과의 거래 구조 전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소부장 기업들 역시 중국향 매출 비중을 재점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도 미국의 요청에 따라 2023년부터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했으며, 도쿄일렉트론(TEL) 등 주요 장비사들이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유럽과 일본이 추가 규제에 합류할 경우, 중국 반도체 자립화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반도체 전문 분석기관 TechInsights는 '중국이 이미 확보한 DUV 장비만으로도 향후 5~7년간 특정 공정 노드의 자체 양산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즉, 수출 차단의 효과가 단기보다는 중장기에 걸쳐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TSMC는 미국의 규제 방향에 맞춰 대중국 첨단 칩 공급을 이미 중단했으며,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 재편 흐름은 DUV 수출 규제 강화와 맞물려 글로벌 반도체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ASML 주가가 중국 규제 강화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추가 수출 금지 확정 시 단기 주가 하락 압력이 예상되나, 중장기적으로는 서방 팹의 장비 수요 증가로 상쇄될 것이라는 분석도 공존한다.
국내 장비·소재 기업 입장에서는 이번 규제 흐름이 오히려 비중국 공급망 내 점유율을 높이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일본·유럽 팹의 투자 확대에 따른 수혜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포지셔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