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탄탈럼·니오븀 수입 러시아 기업 4곳 제재…서방 공급망 재편 압박 가속

영국 정부가 탄탈럼(Ta)과 니오븀(Nb) 등 이중용도(군사·민간 겸용) 희귀금속을 서방 시장에 공급해온 러시아 기업 4곳에 대해 신규 제재를 단행했다.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대러 경제 압박의 일환이자,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려는 서방 공조 전략의 연장선이다.
탄탈럼은 스마트폰·노트북 등 전자기기의 커패시터(축전기)와 반도체 공정 장비 부품에 필수적인 소재다. 내열성이 극히 높고 부식에 강해 군용 전자 장비와 미사일 유도 시스템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니오븀은 고강도 특수강과 초전도 자석, 항공우주용 합금에 쓰이는 전략 금속이다.
러시아는 글로벌 탄탈럼 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특히 유럽 시장에 대한 공급 비중이 높았다. 영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제재 대상 4개사는 주로 시베리아·우랄 지역에서 탄탈럼과 니오븀을 채굴·정제해 유럽·영국 전자 및 방산 업체에 납품해왔다. 구체적인 기업명은 영국 재무부 제재 리스트를 통해 공개됐다.
이번 영국의 조치는 미국의 선행 결정과 맞물려 파급력이 크다. 지난 10월 2일 미국 정부도 러시아·북한·중국산 탄탈럼에 대한 수입금지를 공식 확정한 바 있다. 미·영이 잇달아 러시아산 탄탈럼·니오븀 차단에 나서면서, 이들 금속의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지 못한 유럽·아시아 제조 업체들의 공급망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탄탈럼의 대체 공급원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브라질 등이 꼽힌다. 그러나 현재 서방 진영의 채굴·정제 능력은 러시아산 공백을 단기에 메우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고순도 탄탈럼 분말과 잉곳(정제 금속 덩어리) 생산 능력은 소수 업체에 집중돼 있어 즉각적인 대체에 한계가 있다.
니오븀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 브라질의 CBMM(콤파니아 브라질레이라 데 메탈루르자)이 전 세계 니오븀 공급의 약 85%를 담당하고 있어 러시아 의존도가 탄탈럼보다 낮다. 다만 특수강·초전도 마그넷 등 고부가 용도에서는 러시아산 고순도 니오븀의 대체가 쉽지 않다는 전문가 지적이 있다.
국내 전자·방산 업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삼성전기·삼화콘덴서 등 탄탈럼 커패시터 제조 업체는 원료 조달처 다변화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방산 쪽에서도 정밀 유도 무기에 탄탈럼이 쓰이는 만큼, 한국방위산업진흥회 등 관련 기관의 비축 및 대체 소재 연구가 요구된다.
글로벌 탄탈럼 시장에서 가격 상승 압력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탄탈럼 산화물(Ta₂O₅) 기준 가격은 올 들어 이미 20% 이상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미·영의 러시아산 수입 차단이 현실화되면서 비러시아산 탄탈럼 원료에 대한 수요가 집중될 경우 추가 가격 급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급망 재편의 수혜 가능성도 있다. 호주 글로벌어드밴스드메탈즈(Global Advanced Metals)와 캐나다 탄탈럼마이닝 등은 생산 확대 계획을 발표하며 투자자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업체가 실제 증산에 성공하면 2026~2027년께 시장 공급 부족이 일부 해소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의 이번 제재는 유럽연합(EU)의 추가 조치를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EU는 현재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해 희귀금속 공급망 자립도 강화를 추진 중이며, 러시아산 탄탈럼·니오븀에 대한 독자 제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U가 가세할 경우 러시아의 대서방 희귀금속 수출은 사실상 전면 봉쇄되는 셈이다.
한국 정부도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탄탈럼을 38개 핵심광물 가운데 하나로 지정하고 비축량 확대를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망 재편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호주·캐나다 등 자원 보유국과의 양자 협력을 선제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전망과 투자 시사점으로는, 탄탈럼·니오븀 관련 ETF 및 채굴 기업 주가가 단기적으로 제재 발표 효과를 반영해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도시광산(전자 폐기물 재활용) 방식의 탄탈럼 회수 기술에 투자 관심이 쏠릴 가능성이 있다. 로렌스 테크놀로지컬 대학 등 서방 연구기관이 희귀금속 재활용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