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헬륨 수출 전격 금지…반도체 공정 차질 우려

중국 당국이 최근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헬륨(He)의 수출을 전격 금지한다고 발표하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후속 조치를 조만간 추가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혀, 조치의 범위와 기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헬륨은 반도체 웨이퍼 제조 과정에서 세정, 냉각, 불활성 분위기 유지 등 다양한 공정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핵심 소재다. 특히 극저온 환경이 요구되는 양자컴퓨터용 초전도체 냉각이나 첨단 리소그래피 장비의 렌즈 냉각에도 쓰여, 차세대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도 그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 헬륨 생산량은 연간 약 1억 7,500만 세제곱미터(㎥) 수준으로, 미국·카타르·알제리·러시아 등이 주요 생산국이다. 중국은 자국 내 생산량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헬륨의 중계 거점 역할을 해왔으며, 아시아 시장에 재수출하는 물량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왔다.
이번 조치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곳은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주요 반도체 생산국이다. 국내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팹(fab·반도체 공장)에서 대량의 헬륨을 소비하고 있으며, 단기적으로 대체 조달처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업계에 따르면 헬륨 현물 가격은 이번 중국의 수출 금지 발표 직후 단기간 내 10~15% 급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헬륨 공급사인 에어리퀴드(Air Liquide), 린데(Linde), 에어프로덕츠(Air Products) 등은 기존 장기 계약 물량 보호에 나서고 있으나 현물 시장의 변동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헬륨 수입 구조를 살펴보면, 한국은 연간 약 400~500만 ㎥의 헬륨을 수입하며 이 중 상당 부분을 중동 및 미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통한 러시아산 헬륨의 간접 수입 비중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이번 조치의 파급 효과는 직접적인 대중 수입분을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소재 업계 전문가는 '헬륨은 단기간 내 대체 소재를 찾기 어려운 희귀 기체 원소로,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팹 가동률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며 '미국·카타르산 헬륨의 추가 확보 계약 체결을 서두르는 동시에, 헬륨 재활용 시스템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중국의 헬륨 수출 금지는 앞서 단행된 갈륨·게르마늄·흑연 등 핵심 광물 수출 통제 조치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 핵심 소재를 전략 무기화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무역 마찰을 넘어선 구조적 변화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헬륨을 국가 핵심 전략물자 목록에 포함시켜 비축 의무화 및 수입 다변화 지원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와 연계한 대체 공급처 발굴 지원 프로그램도 논의되고 있다.
전북도와 익산시는 이번 사태를 지역 반도체 소재 산업 육성의 기회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전북도는 최근 반도체 소재 기업 간담회를 열고 헬륨 대체 공정 기술 및 재활용 시스템 개발에 대한 지역 기업 참여를 독려했으며, 익산시도 관련 R&D 지원 확대를 검토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헬륨 사용량을 줄이는 '헬륨 린(Helium Lean)' 공정 개발과 사용된 헬륨을 회수·재정제해 재활용하는 순환 인프라 구축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반도체 장비 제조사는 이미 헬륨 소모를 최소화한 설계를 상용화하고 있으며, 국내 소재·장비 기업들의 기술 개발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적 공급 충격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 공급망 재편을 촉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호주·캐나다 등 우방국 기반의 헬륨 생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관심이 높아질 것이며, 국내 기업들도 헬륨 저장 및 재활용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를 검토할 시점이라는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
헬륨 공급 불안정 이슈는 반도체 소재 자립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조달 다변화, 재활용 기술 개발, 전략 비축 확대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경우, 이번 위기가 국내 소재 경쟁력 강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