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자원 무기화 가속…소재 공급망 '新냉전' 서막

중국이 헬륨 수출 금지를 전격 발표하면서, 글로벌 소재 공급망 재편 흐름이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앞서 중국은 갈륨·게르마늄(2023년), 흑연(2023년), 안티모니(2024년)에 이어 희토류 전반에 대한 수출 허가 요건을 강화해왔으며, 이번 헬륨 조치는 통제 대상을 광물에서 가스류로 확대한 새로운 국면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심화가 자리한다. 미국의 반도체·AI 수출 통제에 맞서 중국이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소재·가스류를 역(逆)으로 통제하는 '소재 보복'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국의 상호 공급망 압박은 사실상 '소재 냉전'으로 불릴 만한 수준으로 격화됐다.
글로벌 공급망 조사기관 레실리언스360(Resilience360)에 따르면, 중국이 생산 또는 처리를 지배하는 핵심 소재·광물 품목은 현재 35개 이상에 달한다. 이 중 반도체·배터리·방위산업에 직결된 품목만 20여 개로, 서방 국가들의 대중 소재 의존도는 여전히 위험한 수준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핵심광물 및 소재 안보 법안(Critical Minerals and Materials Security Act)'을 통해 동맹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도 핵심 소재 자립화와 우방국 기반 조달 확대를 초당적 과제로 추진하며 관련 예산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2024년 발효된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에 따라 2030년까지 역내 핵심 광물·소재의 채굴·가공·재활용 자립도를 각각 10%·40%·15%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추진 중이다. EU는 특히 아프리카·중앙아시아 광물 부국과의 파트너십 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은 미국·EU와의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독자적인 소재 자립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6년 '핵심소재 공급망 비상대응 체계'를 고도화해, 헬륨·네온·크립톤 등 희귀가스를 포함한 30개 이상의 품목에 대한 비축 기준 강화와 대체 공급처 발굴 지원을 추진할 방침이다.
일본·호주·캐나다 등 자원 부국들은 이번 중국의 자원 무기화 흐름을 자국 광물 수출 확대의 기회로 보고 있다. 호주는 미국·한국·일본과의 핵심광물 삼각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으며, 캐나다도 희토류·희귀가스 분야에서 대규모 생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확대 중이다.
글로벌 소재 공급망의 '탈중국화(De-Sinicization)' 흐름이 빨라지고 있지만, 단기간 내 대체가 어려운 품목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희토류·희귀가스·고순도 화학물질 분야에서는 중국의 생산 원가 경쟁력이 여전히 압도적이어서, 대체 공급처의 경제성 확보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 글로벌 공급망 전문가는 '소재 공급망 재편은 10년 단위의 장기 프로젝트'라며 '단기 대응으로 재고 확충과 조달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재활용·대체 소재 기술 개발과 국내 생산 역량 강화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사태는 소재 공급망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성 중심으로 글로벌 최저 비용 조달이 당연시됐지만, 이제는 '리스크 조정 비용(Risk-adjusted Cost)'을 고려한 소재 조달 전략이 기업과 정부 모두에게 필수적인 경영·정책 과제가 됐다.
향후 소재 공급망 재편의 수혜국은 풍부한 자원과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함께 갖춘 국가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호주·캐나다·칠레·카자흐스탄 등 자원 부국의 광물·소재 관련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핵심 소재 재활용 및 대체 소재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기업가치도 재평가받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자원 무기화 전략은 단기적 충격을 넘어 글로벌 소재 공급망의 구조적 재편을 촉진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이 위기를 소재 자립화와 공급망 다변화의 가속 기회로 삼아, 정부·기업·연구기관의 긴밀한 협력 체계 아래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