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20억달러 핵심광물 비축 가동…중국 갈륨 재개와 충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올해 2월 120억 달러(약 17조 원) 규모의 전략 핵심광물 비축 프로그램을 공식 가동했다. 희토류, 리튬, 코발트, 니켈 등 첨단 산업과 방위 산업의 핵심 원자재를 장기적으로 비축해 중국 의존 구조를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 정부 구매를 넘어 미국 내 채굴·정제 시설 투자 촉진과 동맹국 공급망 연계까지 포괄하는 종합 대책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중국에 대한 구조적 의존을 끊는 '10년 프로젝트'로 규정하며 의회 초당파 지지를 이끌어냈다.
배경에는 중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지배력이 있다. 현재 중국은 글로벌 희토류 정제 능력의 60~90%를 장악하고 있다. 미·중 비즈니스 협의회(USCBC)가 올해 6월 발표한 보고서는 중국의 수출 통제와 라이선스 지연으로 인해 일부 희토류 원소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한편 중국은 6월 하순 4개월간 중단했던 일본에 대한 갈륨 수출을 전격 재개했다. 갈륨은 반도체·LED 소재로 쓰이는 핵심 원소로, 중국은 글로벌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의 갈륨 수출 재개는 미·일 반도체 협력 관계에서 일본의 이탈을 유도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갈륨 재개와 헬륨 금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중국의 핵심광물 수출 통제 전략이 더욱 정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원소는 풀고 다른 원소는 틀어쥐는 방식으로 국가별·품목별로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이에 대응해 미국·한국·일본은 공급망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특히 취약한 위치에 있다. 흑연의 대중국 의존도는 99%에 달하고, 희토류는 80% 이상, 배터리 핵심 소재인 황산니켈도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한다. 정부는 10대 전략 핵심광물의 재자원화율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올해부터 AI 기반 핵심광물 수급위기 진단 모델 도입을 추진 중이다. 희토류, 리튬, 니켈 등 핵심광물의 공급망 위험도를 AI로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으로, 수급 이상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대응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GeoAI 기반 핵심광물 탐사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위성 이미지와 지질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광물 매장지를 발굴하는 기술로, 호주·캐나다·아프리카 등 신규 채굴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에 실질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폐배터리에서 유효 광물을 추출하는 재자원화 기술도 공급망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성일하이텍 등 국내 기업들이 리튬·코발트·니켈 재활용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2030년 이후 재자원화 물량이 공급망 다변화의 실질적 완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120억달러 비축 프로그램은 한국 기업들에게도 간접적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이 동맹국 공급망 참여를 독려하는 만큼, 국내 희토류 정제·가공 기업들이 미국의 비축 물량 조달망에 편입될 경우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 정부 차원의 미국과의 핵심광물 협력협정 추진이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핵심광물 공급망 경쟁이 향후 10년간 산업 패권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누가 어떤 광물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반도체·배터리·방산 분야의 생산 역량을 결정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한 산업 전략 전문가는 '미국의 비축 프로그램은 단순 재고 쌓기가 아니라 동맹국과의 공급망 재편을 통해 중국 의존 구조 전체를 해체하려는 장기 전략'이라며 '한국은 이 흐름에서 소재 가공·정제 역량을 강화해 광물 가공 허브로서의 입지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