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테라파워 '나트륨' SMR 사업협력 합의…글로벌 원전 공급망 진입

SK이노베이션이 14일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나트륨(Natrium)'을 개발 중인 테라파워(TerraPower)와 사업협력 주요 조건 합의서(HOA)를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추형욱 SK이노베이션 대표와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합의서에 서명하며 양사의 전략적 연대를 공식화했다.
테라파워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06년 설립한 차세대 원자력 기업으로, 현재 미국 와이오밍주 켐머에 345MW급 나트륨 SMR 실증로를 건설 중이다. 나트륨 SMR은 기존 경수로와 달리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4세대 원자로로, 용융염 에너지저장 시스템을 탑재해 전력 출력을 500MW까지 높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양사는 테라파워가 미국에 건설하는 SMR 실증로 및 후속 상용 프로젝트에 SK이노베이션의 참여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국내 SMR 공급망을 적극 활용하고, 나트륨 SMR의 한국 내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는 한편 글로벌 프로젝트 공동 발굴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번 협력은 지난 8월 초 빌 게이츠의 방한 이후 구체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게이츠 측이 한국을 SMR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낙점했다는 업계 평가가 나온 데 이어, SK이노베이션이 첫 번째 구체적 파트너십 성과를 내놓은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의가 단순 투자 참여를 넘어 한국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원전 공급망 진입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나트륨 SMR에는 고온·고방사선 환경에서 견디는 특수 합금강, 세라믹 단열재, 액체 나트륨 배관용 스테인리스 소재 등이 핵심 자재로 쓰이기 때문이다.
국내 소부장 업계 관계자는 '나트륨 냉각 원자로는 기존 경수로와 소재 사양이 상당히 다르다. 특히 고온용 크롬-몰리브덴 합금강과 이음매 없는 배관 제작 역량을 갖춘 국내 기업들이 공급망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포스코 등이 잠재적 협력 대상으로 거론된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2020년 테라파워에 4억 달러를 조건부 지원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최근 트럼프 행정부도 SMR 상용화를 에너지 안보 핵심 정책으로 채택하며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민간 기업들의 SMR 투자 참여를 더욱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기존 에너지·화학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탈탄소 전환을 추진하는 가운데, SMR을 미래 사업 축으로 편입하려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회사 측은 '나트륨 SMR은 AI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에 필요한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SMR 시장은 2030년대 초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5년까지 전 세계 SMR 누적 설비용량이 80GW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공급망 선점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외에도 캐나다·영국·체코 등 10여 개국이 SMR 도입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SMR 강국 도약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수출형 SMR 개발을 완료하고 공급망 육성에 2조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한 바 있다. 이번 SK이노베이션-테라파워 협력은 민관 협력 생태계 구축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 애널리스트 박모 씨는 '이번 합의의 핵심은 한국 기업이 미국 SMR 실증로 건설 단계부터 참여해 레퍼런스를 확보한다는 점'이라며 '추후 아시아·중동 SMR 프로젝트 수주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전략적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SK이노베이션은 HOA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투자 규모, 지분 참여 방식, 공급망 구성 등을 담은 본계약(MOU 또는 JDA)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소재·장비·시공 분야 협력사 선정 과정에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참여 기회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