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불화텅스텐 일본 공급 중단…삼성·SK 소재 비상

반도체 금속 배선 증착 공정의 핵심 원료인 육불화텅스텐(WF₆, Tungsten Hexafluoride)을 생산하는 일본 업체 2곳이 올해 안에 생산을 완전히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 기업들은 그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WF₆을 직·간접 공급해 왔으며, 생산 중단 이유로는 설비 노후화와 수익성 악화를 들고 있다.
WF₆은 반도체 텅스텐 플러그(W-plug) 공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재다. 로직 칩과 메모리 반도체 모두에서 금속 배선을 형성하는 CVD(화학기상증착) 공정에 투입되며, 공급이 끊길 경우 수십 나노미터급 미세 공정 전반이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다. WF₆은 대기압에서 기체로 존재하는 위험물질로, 취급·저장 인프라를 갖춘 생산업체가 전 세계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WF₆ 주요 공급사는 일본의 스텔라케미파·소와이렉트로닉머티어리얼즈, 미국의 린데(Linde), 한국의 후성 등이다. 이번 생산 중단을 결정한 일본 업체 2곳의 구체적 명칭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해당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을 감안하면 글로벌 WF₆ 공급량의 15~20%가 단기간에 감소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즉각 대체 공급처 확보에 나섰다. 두 기업은 후성·린데 등 기존 공급사의 공급량 확대를 요청하는 한편, 독일·미국 내 대체 공급사와의 긴급 협상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적으로는 재고를 활용하면서 수급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WF₆ 생산 기업인 후성은 이번 사태의 반사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후성은 불화수소(HF)와 고순도 불소 가스 등 반도체 공정용 특수가스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WF₆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추가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WF₆ 증산에는 수개월 이상의 설비 확충 기간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는 반도체 공정 소재의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일본의 2019년 수출규제로 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가 문제가 됐을 때와 유사하게, 이번에는 기업의 자발적 생산 중단이 공급 충격을 야기하고 있다. 소재 공급망의 취약 고리는 지정학적 리스크 외에도 기업 경제성 논리에서도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적 공급 차질 이상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고순도 특수가스 시장은 설비 투자비가 크고 안전 규제가 엄격해 신규 업체 진입이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위험 특수가스 분야는 한두 업체만 무너져도 대체가 불가능한 구조적 취약성이 있다'며 '공공 성격의 전략비축 또는 국가 주도 생산 역량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의 소부장 공급망 정책에도 시사점이 크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성과가 가시화됐음에도 WF₆처럼 특정 해외 기업에 절대 의존하는 품목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100대 핵심 소재 목록 재검토와 특수가스 분야 지원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2분기에 4,250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고성장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WF₆ 공급 차질은 업황 모멘텀에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수급 불안정이 장기화될 경우 WF₆ 가격 급등과 함께 칩 생산 원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은 이번 사태를 특수가스 분야 국산화 투자 가속의 촉매로 보고 있다. 중국의 수출통제, 일본의 공급 불안에 잇따라 노출된 국내 반도체 산업은 특수가스·포토레지스트·슬러리 등 공정 소재 전반에 걸쳐 국산 대체재 또는 복수 공급원 확보 전략을 더욱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후성·원익머트리얼즈 등 국내 특수가스 기업들의 기술 투자와 생산 역량 확충이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