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메가 프로젝트'로 반도체 소재 미래 사업 활로 개척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반도체 소재 분야의 '메가 프로젝트'를 잇따라 추진하며 미래 사업 활로 찾기에 본격 나서고 있다. 원유 정제와 범용 플라스틱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반도체 공정 소재, 전자 화학, 기능성 필름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전략 축을 이동하는 것이 최근 업계의 핵심 화두다.
롯데케미칼은 2026년 초 1조 원 이상 규모의 반도체 소재 사업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전공정용 고순도 화학 소재와 첨단 패키징 소재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솔루션 역시 반도체 봉지재(EMC)와 인쇄회로기판(PCB)용 에폭시 수지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가 반도체 소재로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중국발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자리하고 있다.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화학 제품의 마진이 2023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사업 구조 전환이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가 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 소재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은 대신 일단 채택되면 안정적인 장기 수주가 보장되는 특성이 있다. 고객사인 반도체 기업들이 공정 안정성을 위해 인증된 소재 공급사를 쉽게 교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범용 화학 대비 훨씬 높은 수익성과 예측 가능한 매출을 의미한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5~25%로, 범용 석유화학(3~7%)의 3~5배에 달한다. 특히 포토레지스트, 전구체(precursor), CMP 슬러리 등 전공정 소재는 기술 장벽이 높아 단가 협상력이 크다.
뉴스핌 보도에 따르면 국내 한 화학사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5년 안에 반도체 소재 매출 비중을 전체의 30%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회사의 장기 생존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다수 기업이 전략 목표에 반도체 소재 비중 확대를 명시하기 시작했다.
다만 단기간에 기술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과제다. 반도체 소재는 나노미터(nm) 단위의 정밀한 순도 관리와 공정 호환성 검증이 필요하며, 고객사 인증까지 통상 2~3년이 소요된다. 기술 인력 부족과 핵심 특허를 둘러싼 일본·미국 기업과의 장벽도 극복해야 할 난제다.
정부도 이 같은 산업 전환을 지원하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2.0 전략'을 통해 반도체 소재 국산화 프로젝트에 2026~2030년 총 2조 원 이상의 정책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세액공제 확대와 인증 패스트트랙도 함께 추진된다.
해외 선도 기업들과의 기술 제휴도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중견 화학사들이 독일 머크(Merck KGaA), 미국 듀폰 등 글로벌 소재 기업의 기술 라이선스를 도입하거나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 기술 개발 기간을 단축하려는 전략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반도체 소재 전환이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투자 과열로 인한 과잉 경쟁과 기술 격차를 무시한 무리한 진입이 또 다른 손실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철저한 기술력 검증과 고객사 확보 전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반도체 소재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수혜를 동시에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AI 반도체·첨단 패키징 수요가 2030년대까지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 화학 기업들의 선택적 전문화 전략이 업계 지형을 바꾸는 변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반도체 소재 피벗은 선택이 아닌 시대적 흐름이 됐다. 대규모 투자와 기술 역량 확보를 병행하는 기업이 미래 성장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