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유리기판 공급망 2라운드…소재 동맹 구축 경쟁 격화

AI 반도체용 유리기판 시장에서 공급망 경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초기에는 누가 먼저 유리기판 자체를 양산하느냐가 화두였다면, 이제는 유리기판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유리 슬리밍 화학제, 저유전 수지, 고정밀 구리박 등—의 독점적 공급 계약을 어느 기업이 선점하느냐로 경쟁 축이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유리기판 시장은 2026년 약 15억 달러 규모에서 2030년에는 8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Blackwell) 후속 제품군이 유리기판을 채용할 경우 수요 폭발이 예상되면서, 소재 공급망 구축이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기는 미국 코닝(Corning)과의 유리 소재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일본 AGC와도 공정 소재 공급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C 산하 앱솔릭스는 미국 애틀랜타에 파일럿 라인을 운영하며 고객사인 인텔과 협력하고 있으며, 소재 조달 루트 다변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ABF) 기판 대비 열팽창계수가 낮고 표면 평탄도가 우수해 AI 가속기와 같은 대형 다이(die) 패키징에 유리하다. 그러나 유리 특유의 취성(brittle)으로 인해 가공·드릴링 공정이 까다롭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레이저 공정 장비 및 화학 소재가 새로운 병목 지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소재 동맹 경쟁에서 두드러지는 움직임 중 하나는 일본 소재 기업들의 공격적 파트너십이다. 아지노모토(Ajinomoto)는 유리기판용 절연 필름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스미토모전기는 유리기판 내 초미세 비아(Via) 형성용 레이저 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 일본 기업들과의 협력에서 뒤처질 경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 소재 기업 중에서는 동우화인켐과 이녹스첨단소재가 유리기판용 소재 개발에 착수했으며, 솔브레인은 유리 식각(에칭) 케미컬 부문에서 신규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들 기업들의 기술 완성도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느냐가 향후 공급망 구도를 결정할 핵심 변수다.
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은 소재 혼자 되는 게 아니라 장비, 화학제, 패키징 공정이 모두 맞물려야 한다"며 "지금 소재 동맹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5년 후 시장 점유율이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맹 구도 형성이 경쟁력 유지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인텔은 자사 파운드리 서비스를 통해 유리기판 양산을 선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으며, 이미 아리조나 공장에 유리기판 전용 라인을 구축 중이다. 인텔의 유리기판 상용화가 현실화될 경우 관련 소재 기업들의 수혜가 본격화될 전망으로, 국내 기업들의 인텔 공급망 진입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강화되는 추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차세대 패키징 소재 국산화 과제를 소재·부품·장비 핵심 전략 품목에 포함시켜 지원 중이며, 2026년 관련 R&D 예산도 전년 대비 늘어났다. 유리기판 소재를 포함한 첨단 패키징 소재 자립화가 정책 우선순위로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리기판 소재 시장의 최대 리스크로 기술 검증 지연을 꼽는다. 유리기판 자체가 아직 대량 양산 검증 단계에 있는 만큼, 소재 기업들이 선투자한 개발비를 회수하기까지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장기 성장 가능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AI 연산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한, 기존 유기 기판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리기판과 그 소재 생태계의 성장은 필연적이라는 분석이다.
투자 측면에서도 유리기판 관련 소재 기업들은 중장기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기술 개발 단계에 있는 국내 소재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양산 시점 이전부터 선반영되는 경향이 있어, 소재 동맹 구도 변화와 파일럿 성과 발표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