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 AI 반도체 소재 증산…필름 기업의 변신

후지필름홀딩스가 AI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응해 반도체 공정용 소재 생산 규모를 대폭 늘린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회사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 고순도 세정액, 전자소재 분야 생산라인을 중심으로 추가 설비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후지필름은 그간 필름·카메라·복합기 사업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2000년대 초부터 반도체 소재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현재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약 15%를 확보하고 있으며, ArF(불화아르곤) 및 EUV(극자외선) 공정용 소재 개발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AI 서버와 고성능 컴퓨팅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첨단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소재 수요도 함께 급증하고 있다. 특히 EUV 노광 공정에 필수적인 고감도 포토레지스트는 수요 대비 공급이 타이트한 상황으로, 주요 소재사들이 증산 경쟁에 나서고 있다.
후지필름 측 관계자는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필름이 사라질 때 우리는 소재 기술로 방향을 틀었다'며 '이번에는 AI 반도체 시대의 핵심 파트너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회사는 이미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파운드리·메모리 기업에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투자 규모와 관련해 회사는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향후 3년간 수천억 엔 규모의 설비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후지필름의 반도체 소재 부문 매출은 2024년 대비 2025년 약 20%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반도체 소재 업계는 후지필름의 증산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 동진쎄미켐, 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기업들이 일부 물량을 국산화하고 있지만, 고난도 EUV 공정용 소재에서는 여전히 일본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후지필름 외에도 신에쓰화학, JSR(현 도레이 자회사) 등 일본 소재 기업들이 AI 반도체 호황을 겨냥해 생산 능력 확대에 속속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도 반도체 소재 산업을 국가 안보 핵심 자산으로 지정하고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 중이다.
기술적으로는 2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에서 EUV 공정이 필수화됨에 따라, EUV용 포토레지스트 수요가 향후 5년간 연평균 25%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시장 조사 기관의 전망도 나오고 있다. 후지필름은 이 시장을 전략적 성장 축으로 삼고 있다.
국내 업계 전문가는 '일본 소재사들의 생산 능력 확대는 단기적으로 공급 안정에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소재 기업의 독자 기술 개발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고 강조했다. 국산화 없이는 일본 의존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경고다.
후지필름의 AI 소재 사업 확장은 '필름 회사'라는 구시대적 이미지를 벗고 첨단 소재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장기 전략의 결실이다. 반도체 소재·바이오 이미징·의료 등으로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